오늘 고린도전서 2장 10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성령이 아니면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은 "모른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창에 물어보거나, 요즘은 그마저도 필요 없이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어떤 AI 회사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 말투를 몇 초만 분석해도 그 사람의 감정 상태와 심리까지 짚어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 빠른 연산, 정교한 알고리즘 — 점점 우리는 모르는 것이 없는 시대에 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아무리 정교한 컴퓨터와 알고리즘도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하나님의 마음은 다른 어떤 도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도, 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쓸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는 웅변과 철학과 처세술과 지혜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려 사람들이 모여들고, 논리가 정연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문화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2:3)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본문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웅변도, 철학도, 처세술도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찰하시는 분입니다. 10절에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통달하시느니라"의 헬라어(에라우나오)는, 광부가 광맥의 뿌리까지 찾아내고, 형사가 사건의 실마리를 끝까지 파헤치는 것을 뜻합니다. 탐색하고 철저하게 조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철저하게, 구석구석 아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부에서 지식을 얻어 오거나 도움을 받아서 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그 자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유로 말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렇듯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님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30년 넘게 산 부부라도 서로 모를 때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내 속에 있는 나의 영이 아니고서는 나조차도 나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든, 철학자든, 종교학자든, 아무리 목사라도, 아무리 영이 충만한 자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마음 깊은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9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알아가는 모든 방법인데,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열쇠는 성령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을 어디서 배우고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책을 통해서입니까? 경험을 통해서입니까? 더 많이 검색하고 배워서입니까?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2절에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 알게 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신유의 은사를 행하면 "성령 받았다"라고 하는데, 그런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표시일 뿐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은 것,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 그리스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 새로운 신분을 얻은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서 죄 용서를 받았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알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 — 그것이 곧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잘 모르겠다"라고 답합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 내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오히려 모르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의 가치보다는 스펙을 쌓고, 남보다 앞서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더 힘을 쏟으며 자기를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길을 말씀합니다. "너의 가치는 네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주어졌다." 12절의 "은혜로 주신 것들"은 "값없이 주었다"라는 헬라어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죄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은혜를 주셨고, 그것을 아는 것 —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가치입니다.
바울은 웅변과 수사학을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 도시에서 말솜씨로 승부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가르쳐 주신 그대로 전하고, 세상의 처세술 앞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그들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십자가의 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알아가려 합니까?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알아가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세상의 지식과 방법과 도구가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이어져 온 구원의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사람과 함께하기를 원하셨으나 사람은 죄로 그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렸습니다. 그 끊어진 자리를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는 다시 이을 수 없었는데, 지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그 자리를 다시 이으셨습니다. 그 은혜를 성령을 통해 알아가는 것 —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스스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그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떻게 받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 나에게 성령을 주셔서 십자가를 고백하고 나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런 고백을 하면 나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이고,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외적인 현상이나 방언이나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야만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를 고백하는 그 힘이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다 그 속에 성령이 계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처음에 성령님이 나를 10% 주장하셨다면, 이제는 100% 주장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님이 성경의 문도, 성경을 보는 눈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문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을 더 알고 성경을 더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그 은혜를 더 분명하게 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예수님의 깊은 은혜를 성령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한 주간, 남은 날들도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를 붙들고 살게 하시고, 흔들릴 때마다 성령의 조명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