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린도전서 3장 10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짓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집을 지어 보신 분이 계십니까? 직접 지어 보지는 않았어도 옆에서 구경은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건축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오랫동안 작업하는 것이 기초 공사입니다. 왜 기초 공사가 중요합니까? 기초가 잘 되어야 그 위에 집을 지어도 태풍이나 지진이 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기초, 곧 터는 남습니다. 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지난 유적지를 가 보면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터가 중요합니다. 터는 그 집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인생을 건축에 비유합니다. 하나는 터에 대해, 다른 하나는 그 위에 쌓는 재료에 대해 말합니다. 터에 대해서는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하라"라고 합니다. 이 터는 누가 만드셨습니까?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져 놓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터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바울은 묻습니다. "그 터 위에 너는 집을 어떻게 짓느냐?" 뒤에 나오는 내용에서 바울은 "네가 그 터 위에 집을 지었는데 불이 났다.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그 날에 주님께서 불 앞에 세워 두셨을 때 무엇이 남아 있을까 — 그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첫째, 터는 이미 놓여 있습니다. 10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라고 말씀합니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습니다. 11절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다른 터를 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터 외에는 그 어떤 터도 놓을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으신 이 터로만 갈 수 있습니다.
왜 다른 터를 놓아서는 안 됩니까? 우리는 살면서 자꾸 인생의 터를 바꾸려 합니다. 젊었을 때는 내 실력을 터로 삼으려 하고, 돈이 터라고 생각하는 때도, 지식이 터라고 생각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젊음도, 지식도, 돈도, 권력도 우리의 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터가 되십니다.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 교인들은 지금 예수를 모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미 믿고 복음의 자리에 앉아 있는 성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에 서야 한다"라는 권면이 아니라, 확신이 없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는 선포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다른 터를 세울 수 있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너희는 반드시 이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터를 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 터는 이미 놓여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첫째, 이 터는 내가 놓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무엇으로 쌓았느냐가 중요합니다. 터는 하나님이 놓으셨고 그리스도께서 그 터가 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를 조심할지니라"라고 합니다. "조심하라"는 "눈여겨보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이라고 말씀합니다. 여섯 가지 재료가 나오는데, 금·은·보석 세 가지와 나무·풀·짚 세 가지가 비교됩니다. 이 두 부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값이 비싸고 싼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본문의 핵심은 불에 견디는 것과 불에 타 버리는 것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불이 나도 타서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불순물이 제거되어 더 좋아집니다. 그러나 나무와 풀과 짚은 불이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재료는 봉사를 많이 하고 헌신을 많이 하고 물질을 많이 드리는 그런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싼 재료냐 값싼 재료냐의 차이가 아니라, 불에 견디는 재료냐 불에 타 버리는 재료냐의 문제입니다. 나무가 나쁜 재료입니까? 아닙니다. 나무로도 멋진 집을 짓고, 요즘은 목재로 지은 집이 더 비쌀 수도 있습니다. 짚으로도 지붕을 얹고 비를 막을 수 있고, 오히려 더 빨리, 어쩌면 더 아름답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 불이 오면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데 남지 않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고 박수받고 사진 찍히는 일이 있고, 아무도 모르고 이름도 안 남는 일이 있습니다. 새벽에 혼자 나와 예배당 바닥을 닦는 일, 아픈 성도 이름 하나 붙들고 몇 달째 기도하는 일, 자기 형편도 빠듯하지만 조용히 봉투 하나를 두고 가는 일. 사람 앞에서는 앞의 것이 좋아 보이지만, 불 앞에서는 뒤의 것이 남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쌓아 온 것에 불이 한번 지나가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학벌이 남겠습니까? 경력, 자동차, 통장 잔고가 남겠습니까? 이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불이 지나갔을 때 남느냐 남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금과 은과 보석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설명하지 않지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되, 끝까지 남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이 말하는 금과 은과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모습입니다. 남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동기입니다. 남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남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한 일을 기록해 보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일이 금인가, 나무인가?
셋째, 그 날에 불이 모든 것을 밝힙니다. 13절 하반절부터 15절에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 심판의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의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의 불 하면 다 태워 없애는 것을 생각하는데, 본문의 불은 벌하는 불이 아니라 밝히는 불입니다.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태워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드러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인지, 하나님께 보이려고 한 것인지 다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쌓은 집은 어떻습니까? 혹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사람은, 불이 나서 공적이 다 타 버리면 "나는 구원을 못 받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닙니다. 집은 타지만 터는 남아 있습니다. 그 터는 누가 만드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만든 터였다면 불로 다 타 버려 구원과 상관없게 되지만,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셨기에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불 가운데서 받는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터는 남아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되겠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본문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안심하세요.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이 쌓은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둘째, "그러나 방심하지 마세요. 그 날에 빈손으로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심해서도 안 되고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 터를 세워 구원의 확신이 있고, 그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이 둘을 함께 잘할 때, 하나님 앞에 설 때 더 큰 상급으로, 더 큰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터는 이미 놓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아 주셨습니다. 그러니 터를 놓는 데 힘을 쏟지 마십시오. 우리가 힘을 쏟을 것은, 불에 타도 그 공적이 남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같은 그 동기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가 보이지 않고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 날에 불이 다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서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워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딱 한마디만 생각하십시오. "무엇으로 지었는가? 나는 무엇으로 지어 갈 것인가?"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금과 은과 보석처럼 불에도 견딜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은혜가 풍성한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인생의 터를 우리가 놓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놓아 주신 은혜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쌓았는지 되돌아보게 하시고, 불 가운데서도 그 흔적이 남을 수 있는 집을 짓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날에 빈손으로 서지 않게 하시고,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유튜브 자동자막을 정리한 설교 전문입니다. 실제 낭독 내용과 표현·인용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