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현장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것이 기초 공사입니다. 기초가 잘 되어야 태풍과 지진에도 남습니다 — 천 년, 이천 년 지난 유적지에도 남는 것은 '터'입니다. 바울은 우리 인생을 건축에 비유하며, 하나는 터에 대해, 하나는 그 위에 쌓는 재료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3:10-11). 이 터는 내가 놓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놓아 두신 것입니다. 이 터는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터를 자꾸 바꾸려 합니다 — 젊어서는 실력, 어느 때는 돈, 어느 때는 지식. 그러나 젊음·지식·돈·권력은 우리의 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다른 터로는 갈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놓으신 이 터로만 갑니다.
"각 사람은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3:10, 12). 여섯 재료 — 금·은·보석 vs 나무·풀·짚 — 의 차이는 비싸고 싼 것이 아니라 불에 견디는가, 타 버리는가입니다. 나무나 짚이 나쁜 재료가 아닙니다.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불이 오면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데 남지 않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박수받는 일, 사진 찍히는 일이 있고, 새벽에 혼자 예배당 바닥을 닦는 일, 아픈 성도 이름 하나 붙들고 몇 달째 기도하는 일, 조용히 봉투 하나 두고 가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앞의 것이 좋아 보이지만 불 앞에서는 뒤의 것이 남습니다. 남는 것(금·은·보석)은 "믿음, 소망, 사랑"(고전 13:13)입니다 — 크기가 아니라 동기, 성과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3:13). 이 불은 벌하는 불이 아니라 밝히는 불입니다 — 태워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드러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 한 것인지 하나님께 보이려 한 것인지, 그 날에 다 드러납니다. 만일 공적이 다 타 버려도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3:15) — 그 터를 예수님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안심하되(구원은 내가 쌓은 것에 달려 있지 않음) 방심하지 마십시오(그 날에 빈손으로 서지 않도록).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