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평생 평가받으며 삽니다 — 학교에서는 성적, 직장에서는 실적,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서로를 저울에 올려놓습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것은 아마 누군가의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 칭찬에 하루가 가벼워지고 지나가는 말에 밤잠을 설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의 저울 위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4:1). '일꾼'(휘페레테스)의 공통점은 자기 일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 결정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입니다. '맡은 자'(청지기)는 창고의 열쇠는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의 물건의 주인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창고 앞에 선 사람들의 손 모양, 열쇠 모양만 보고 "누구는 게바파, 누구는 바울파" 나누고 있습니다 — 창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로 판단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4:2). 주인이 요구하는 것은 성과도, 규모도, 재능도, 인기도, 웅변도 아닙니다 — 이 사람이 믿을 만한가입니다. 청지기는 본래 주인이 자리에 없을 때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보는 앞에서만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라 요령입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 예배 끝나고 남아 의자를 정리하는 분, 10년 20년 새벽 기도 자리를 지키는 분, 병상의 성도를 조용히 찾아가 손잡아 주는 분 — 주보에 이름이 실리지 않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지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도다"(히 11:38).
여기서 "그러니 충성하십시오"로 끝나면 또 하나의 저울이 됩니다. 우리의 충성은 흔들리고 연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끝까지 충성하신 주님의 충성(히 3:1-6 — 모세는 종으로, 그리스도는 아들로 신실하셨음) 위에 우리가 충성하는 것입니다. 기초가 든든하니 우리가 흔들려도 그 위에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4:3) — 원문은 "사람의 날"입니다. 우리의 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라 "주의 날"에 드러납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4:5) — 정죄가 아니라 칭찬입니다. 충성은 은혜를 받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