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21장부터는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지를 법규로 알려 주십니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1절).
그 법의 첫머리에 놓인 것이 종의 자유입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2절). 당시 히브리 종은 대부분 빚 때문에 몸을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곱째 해의 자유를 법으로 못 박아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종의 자유를 법으로 명시하신 까닭은 20장 2절에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명기 15장 15절도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법은 종을 만들라는 법이 아닙니다. 종 되었던 백성에게, 너희 안에 영원한 종살이를 남기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도 죄의 종으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인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5절과 6절에는 특별한 길이 하나 더 열려 있습니다. 종이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송곳으로 귀를 뚫고,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깁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도 사랑 때문에 머무는 섬김입니다. 이 뚫린 귀는 믿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모습을 비춰 줍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머무는 섬김입니다.
23절부터 25절에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복수해도 된다는 뜻으로 쓰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이 앙갚음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재판장이 쓰는 말이고, 죄의 형벌에 한계를 두는 법입니다. 받은 것을 넘어서 갚지 말라, 그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종 한 사람까지, 사람의 생명과 몸까지 아끼시고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3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마태가 이 구절을 인용해 예수님이 은 삼십에 팔리셨다고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께 매겨진 값이 종 한 사람의 값과 같았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속량한 것은 그 값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절). 그리고 7절은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종의 값으로 팔리셨지만, 우리를 종으로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설교 요약입니다. 실제 강단에서 선포한 내용과 표현이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